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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와 성과 그리고 기억되는 대표감독은?

by 사희언 2024. 6. 1.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와 성과 그리고 기억되는 대표감독은?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와 성과 그리고 기억되는 대표감독은?


요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올림픽 좌절 소식으로 많은 국민들이 실망과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1984년 이후 40년 만입니다. 황선홍 축구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인도네시아와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아쉽게 패배해서 1988년 이후 올림픽 연속 10회 출전에 도전했으나 무산된 것입니다. 이렇게 전 국민의 관심사 축구에 대한 역사가 궁금해졌습니다. 이글에서는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와 대한민국 축구의 성과, 그리고 기억되는 대표감독은 누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1.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
2. 대한민국 축구의 성과
3. 기억되는 대표감독은?
4. 결론

1.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

 

역사적으로 신라시대 축국이라는 형태의 공차기 놀이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축의 태반이나 방광 등 장기에 바람을 넣어 던지거나 하는 놀이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의 형태가 대한민국에 전파된 것은 고종 19년(1882년)입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기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국 군함 플라잉 호스의 승무원들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빠르고 근대축구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00년에 축구클럽을 조직했고 1904년 국내에 있는 외국인 학교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축구를 전파하면서 그때부터 체계적으로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축구 시합은 1905년 6월 10일 서울 훈련원에서 열린 황성기독교청년회와 대한 축구 구락부의 시합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경기가 열린 것은 1920년대부터입니다.

 

1921년: 제1회 전조 선 축구대회
1928년: 조선축구협회의 전신인 조선 심판협회
1933년: 조선축구협회
1948년: 대한축구협회로 개칭, 국제축구연맹 가입
1954년: 아시아 축구연맹 정식 회원국
1983년: 리그 창립
국가대표팀의 역사적인 첫 경기: 1948년 7월 6일(홍콩과 경기에서 5:1로 승리함)

2. 대한민국 축구의 성과

대한민국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을 통해 세계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최초로 월드컵에 진출한 것은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인데 1954년도입니다. 한국 최초로 박 대통령 배 아시아 축구대회를 1971년에 개최하였습니다. 1976년부터는 박 대통령 배 국제 축구대회로 불렸으며 대통령 배 국제축구대회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1980년부터입니다. 이후 코리아컵으로 다시 명칭이 변경되어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대회가 열렸습니다.

 

현재 불리고 있는 K리그는 1983년 슈퍼리그라는 이름으로 프로축구가 시작되었으며 5개 팀으로 시작된 한국프로축구는 3개 리그에 44개 팀이 있습니다. K리그(프로리그), 내셔널리그(실업리그), K3리그(프로라기보다는 아마추어에 가깝습니다)가 존재합니다. K리그 14개 팀, 내셔널리그 14개 팀, K3리그 16개 팀이 있습니다.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참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 진출,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은 예선 진출 좌절로 탈락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합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본선 진출의 성적을 올립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은 16강 진출을 하지 못했지만 승점 2점을 올리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4강까지 진출하는 성적을 올립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전 국민이 축구에 빠져 열광하는 감동의 현장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참가하였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어 냅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통상 세 번째 16강 진출이라는 성적을 올립니다.

 

올림픽 성적을 살펴보면 2012 런던 대회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했고 2016년, 2020년 도쿄 대회까지 연속으로 8강에 진출했지만 2024년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성과
대한민국 축구의 성과

3. 기억되는 대표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잊지 못할 겁니다. 태극전사들의 눈부신 활약 빛났고 모든 선수가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주목받은 사람은 히딩크 감독입니다. 가장 기억되는 대표감독으로 축구에 대한 식견은 별로 없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는데 탁월한 기여를 했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1946년생)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모두가 의심했을 때 놀라운 결과로 자신의 성과를 입증한 지도자입니다. PSV 에인트호번과 발렌시아, 네덜란드 대표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감독했으며, 2001년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히딩크는 한국의 선후배 문화를 건드리며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처음부터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체코와 프랑스에 0:5로 패하면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고 본선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폴란드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본인의 진가를 증명합니다. 대한민국의 최초 목표인 16강 진출을 달성한 뒤 언론사 인터뷰에서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I’m still hungry)”라는 말로 국민들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4강 신화를 이룬 뒤 대표팀 감독 잔류를 염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염원을 뒤로하고 한국과 이별했습니다.

4. 결론

축구에 대한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별로 없지만 올림픽 출전 좌절이라는 소식에 실망하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 축구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와 대한민국 축구의 성과를 알아보고 대한민국 국민이 대부분 기억하고 좋아하는 히딩크 감독에 알아보았습니다. 축구의 역사를 공부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분이 이번 올림픽 좌절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실패를 복기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고생한 선수와 감독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